‘청룡의 여인’ 김혜수는 영화인 전체가 바치는 ‘청룡영화상’ 트로피를 안고 서른 번째 무대를 내려왔다.
김혜수는 24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44회 청룡영화상을 끝으로 사회자 자리에서 물러난다. 1993년 제14회 청룡영화상에서 첫 MC를 맡은 이후 30년 만이다. 1998년 19회 시상식을 제외하곤 한 해도 빠짐없이 진행을 맡았다. 이날 시상식을 마치며 김혜수는 “한국 영화의 동향을 알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청룡영화상과의 인연이 무려 30회가 됐다”면서 “서른 번을 함께하면서 우리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한 영화인의 연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청룡을 떠나는 소감을 남겼다.
1993년 스물셋 김혜수는 이덕화의 파트너로 청룡영화상 첫 진행을 맡았다. 그해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으로 최연소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는 화려한 MC 데뷔였다. 이후 30년간 자리를 지키며 파격적인 패션, 동료를 향한 애정 어린 축하 코멘트, 매끄러운 진행으로 ‘청룡의 상징’이 됐다. 2009년 신입 MC 이범수가 김혜수에게 롱런 비결을 묻자 “주변분들이 지속적으로 양보해주면 된다”고 농담하며 “가끔은 청룡영화상을 제가 주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평소 김혜수는 청룡영화상을 “우리 청룡”이라 부르며 주최자 못지않은 애정을 드러냈다. 2015년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축하를 받느라 무대에 오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김혜수는 “저는 청룡영화상이 정말 좋아요. 참 상을 잘 주죠?”라며 노련하게 대처했다. 그해 대종상 영화제가 “배우가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고 해 비난을 받은 터라 “김혜수의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영화계 선후배의 수상 후엔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로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배우 천우희가 오랜 무명 끝에 영화 ‘한공주’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눈물을 펑펑 쏟자, 김혜수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천우희를 한공주라고 부를 뻔했다. 얼마나 잘했으면 그러겠느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0년엔 배우 윤여정이 영화 ‘하녀’로 여우조연상을 받자 “선생님이 상 타시면 뒤에서 텀블링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다리에 쥐가 나서 못 하겠다”며 본인의 수상처럼 기뻐했다.
김혜수의 화려한 드레스는 매년 화제의 중심이었다. 과거엔 가슴이 깊이 패거나 등을 완전히 드러낸 섹시한 드레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갈수록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를 선보였다. 2016년엔 ‘여배우는 드레스’라는 공식을 깨고 바지 정장을 입고 등장해 또 한번 이슈가 되기도 했다.
남모를 속앓이도 있었다. 영화제 수상자가 아닌 MC로 서서, 출연작이 아닌 드레스로 주목받는 게 서러울 때도 있었다. 그는 한 유튜브에서 “20대 때 시상식에 갔는데 한번은 마음이 이상하고 씁쓸했다. 그때는 드레스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 난 배우 자격으로 초대받아서 간 게 아닌데 내 속도 모르고”라며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놨다. 이후 그는 2006년 영화 ‘타짜’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김혜수의 옆자리는 이덕화를 시작으로 박중훈, 이병헌, 정준호, 유연석까지 수많은 남자 배우가 거쳐 갔다. 배우 정준호는 한 방송에 출연해 “김혜수는 영화제 한참 전부터 후보에 오른 작품들을 모두 본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술술 나올 정도로 준비한다”며 그의 성실함에 혀를 내둘렀다.
동료들도 청룡을 떠나는 김혜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영화인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정우성은 “김혜수가 영화인에게 줬던 응원과 위로, 영화인과 영화를 향한 김혜수의 뜨거운 애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청룡영화상이 있을 수 있었다. 지난 30년은 청룡영화상이 곧 김혜수이고 김혜수가 곧 청룡영화상인 시간이었다”고 존경을 표했다. 김혜수는 “매년 청룡 무대에서 생생하고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영화인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배웠다”면서 “스물둘 이후로 처음 시상식 없는 연말을 맞이할 김혜수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길 바란다”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남겼다.